여름 지나고 봄

2008. 3. 25. 12:37


쭙쭙쭙. 이럴 땐 좀 조용히 먹었으면 좋겠다.
모두들 조용한데 저기 선생님 귀까지 여름이 젖 먹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아무리 봐도 애 낳은 아줌마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다들 뭐라고 생각할까? 8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강의시간에 들어오고, 참 주책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이렇게 남정네들도 많은데, 뒤돌아 젖을 먹이는 모습이 참 뻔뻔한 아줌마스럽다. 라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선생님의 돌발질문. "문철씨는 집에서도 모범적입니까?" 얼떨결에 고개만 앞으로 돌리며 그렇다고 대답해버렸다. 물론 모범적이긴 하지만, 좀 게으르다는 이야기도 했어야 하는데 이미 지나가 버렸다.

여름이가 아침에 일어나 한참 활동해야 하는 시간에 나름대로 조용히 놀아주고 젖 먹고 금새 잠드니 참 감사하다. 남편의 말대로 선생님도 재미있고, 막연히 알았던 이들이 글을 통해 더 깊고 넓게 보이니 이것 역시 즐거운 일이다. 다들 나를 주책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여름이가 좀 답답해해도, 남편을 포함한 다른 학생들이 여름이 때문에 좀 방해를 받는다 해도 아줌마의 뻔뻔함을 무기 삼아 계속 나와야겠다.

어젯밤 몇 번이나 잠이 깼는지 모르겠다. 새벽 1시, 2시, 5시, 6시 반.
여름이를 낳고부터 5시간 이상 푹 자본적이 없으니 극히 일상적인 일이지만, 지난 밤은 더 자주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설쳤다. 마치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그렇게 설렜다. '여름이 엄마'가 아닌 '최수영'으로 강의에 참여하고 글을 쓰고 좋은 글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니, 참 행복하다.

강의가 끝나고 학교 마당에 앉아 있으니, 봄 햇살이 참 따사롭다. 봄 바람이 싱그럽다. 우리집도 볕이 잘 드는 집인데 새삼 이 봄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지난 7월 여름이가 태어난 이후로 여름에도 여름, 가을에도 여름, 겨울에도 여름만 있었던 나에게, 나에게도 이제 봄이 오려나?




- 남편이 다니고 있는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농부와 인문_강국주 선생님' 수업에 청강하게 되었다. 그 수업의 첫 과제로 '봄을 주제로 생활글'을 썼다. 앞으로 매주 생활글을 하나씩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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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때로 흔들려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by cosmos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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