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이 좋아

2008. 4. 17. 16:53


"그 모임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아, 이제 20년 정도 됐나. 근데 정말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 그냥 읽는거지."
홍사모님은 매주 마을의 몇몇 분들과 함께 책읽기 모임을 하신단다. 모임에서 김교신 전집도 읽었고, 노평구 전집도 읽었다고 한다. 부럽기도 하고 너무 대단해보여서 몇 년 동안 해오셨냐고 했더니, 20년 정도 되셨단다. 우와. 정말 입이 딱 벌어진다.

차마 그 모임에 끼워달라는 말씀은 드리지 못했다. 젊은 사람들끼리 모임을 한번 만들어보라는 말씀에 힘을 얻어, 샘이 엄마, 나, 그리고 배선생님과 함께 화요모임을 만들었다. 샘과 여름이는 청강생이다.

책을 읽을까,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하세가와씨가 빵을 잘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세가와씨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일단 빵 만드는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빵을 좋아하니, 빵만 만들어 먹어도 가사에 보탬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다행히 하세가와씨도 흔쾌히 좋다고 했다. 청강생으로 하세가와씨네 노야와 사라가 더해졌다.

드디어, 15일 화요일. 화요모임 첫날이다.
하세가와씨는 우리집까지 차로 데리러 왔다. 친절한 하세가와씨. 오늘의 메뉴는 스콘이다. 여름이는 식탁의자에 앉고, 샘이는 엄마 품에 안겨서 잔다. 노야와 사라는 식탁 아래에서 논다. 아이들과 함께 가능할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아주 평화로운 시작이다. 하세가와씨는 익숙한 솜씨로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현미유, 유자청, 두유를 넣고 반죽을 한다. 조그맣게 모양을 만들어 토스터기에 넣었다. 오븐을 사용할 수 없는 우리를 배려해서, 토스터기로 빵 만들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 다음은 유자청 대신에 초코렛을 넣고 초코 스콘을 반죽을 했다. 16분 뒤, 고소한 냄새와 함께 첫 작품, 유자 스콘이 나왔다. 노릇노릇 잘도 익었다. 신기하고 참 맛있었다. 여름이와 노야도 맛있게 먹는다. 우리는 모유가 잘 나온다는 캐모마일 향기가 나는 차와 함께 스콘을 먹는다. 그러고 보니 우린 모두 모유 수유 중이다. 몸에 나쁜 설탕, 버터, 우유가 없이도 이렇게 훌륭한 스콘을 만들 수 있다니, 정말 기분이 좋다. 하세가와씨가 남은 스콘 두 봉지를 담아주었다. 

하세가와의 안내로 벚꽃 길에 가서 산책하고 사진도 찍었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얼른 차에 올라탔다. 모두 다 배선생님 댁으로 갔다. 국수를 해주신단다. 배선생님은 한동안 실험실 일로 바빠서 빵만들기 시간에는 함께 할 수 없지만, 화요일 저녁은 꼭 댁에서 먹고 가라 하신다. 노야와 도현이는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고 사라와 여름이는 마루를 차지하고 신이 났다.

국수가 삶기는 동안, 여름이를 엎고, 배선생님 댁 뒷집에 사시는 이재자 어머니 댁에 갔다. 지난번에 놔두고 온 여름이 옷을 찾으러 갔는데, 어머니는 우리에게 주신다고 텃밭에서 쪽파를 한 봉투 뽑아두셨단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마당 한 편에서 미나리를 낫으로 슥슥 잘라 담고, 텃밭여기저기에서 머위도 뜯어 한 봉투 담아주신다. 된장, 고추장은 어떻게 먹냐는 걱정까지 해주신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몇 번을 이야기하고 쪽파, 미나리, 머위가 가득 담긴 봉투를 가지고 다시 배선생님 댁으로 왔다. 미나리와 쪽파는 양이 많아, 하세가와씨와 배선생님께도 좀 나눠드렸다. 나도 뭔가 나눌 수 있으니 기쁘다. 

배선생님께서 저녁으로 국수를 내놓으신다. 쫑쫑 썬 김치, 계란지단, 김가루가 고명을 얹어진 잔치국수이다. 면발에 참기름을 몇 방울 뿌린 게 비결인지 참말로 맛있다. 김치 반찬만으로도 잔치국수 한 그릇을 후딱 비운다.

학교 수업을 마친 샘이 아빠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어느새 밖은 어둑해졌다. 배선생님은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고 떡꾹떡 한봉지를 주셨다. 마다하지도 않고 또 받아 들었다.

서울에서는 ‘집 나서면 돈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선 다르다. 오후 내내 밖에 나갔다왔더니, 배도 부르고 양손도 무거워지고 가슴도 따뜻해진다. 하루 종일 지갑 한 번 열지 않았는데 정말 풍성하다.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될까하는 생각도 든다. 괜히 폐를 끼치며 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언뜻 든다. 하지만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는 것도 팍팍한 도시의 셈법일 뿐, 결코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호의와 나눔을 편히 받아들이고, 또 언젠가 나눌 수 있을 때 나누면 된다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 다음 주 화요일엔 또 뭘 나누고 받고 풍성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농부와 인문' 네번째 글
BLOG main image
들꽃처럼... 때로 흔들려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by cosmoslike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47)
글쓰기 (45)
일상 (71)
삶으로 (11)
사람들 (4)
아이와 함께 자라가기 (13)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