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7일.
이 곳, 홍성을 처음 방문했던 게 딱 일년 전 일이다. 정말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곳 홍성으로 우리는 삶의 터전을 옮겨왔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저렇게 훌륭한 선생님 옆에서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던 그 말이 좋은 씨앗이 되어 이곳으로 오게 된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가까이에서 닮고 싶은 선생님, 선배, 어른을 만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보다는 '아, 저렇게는 늙지 말아야지' 생각을 갖게 하는 분들이 많았다. 자신만 옳은 줄 아는 독불장군,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는 자만으로 가득한 사람, 배우려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나이와 권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삶과 말이 분리된 위선적인 모습...

하지만, 홍순명 선생님은 지난해 처음 뵈었을 때나, 지금이나 정말 '저렇게 나이 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어르신이다. (실상 나는 그렇게 훌륭하게 살아내기 힘들 것 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쉽게 닮고 싶은 분이라는 말은 하기 힘들다. 그냥 옆에서 배우고 싶은 어르신 정도로만 표현하는 게 좋겠다)

매주 한 두번 선생님을 가까이서 뵙지만, 나는 아직 그 분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잘 모른다. 그저 내가 느꼈던 몇 가지를 나눠보고자 한다.

홍순명 선생님께 느꼈던 첫 번째 감동은 '겸손함'이다.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시초이자, 윤구병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학교인 풀무학교를 50여년간 새워오며,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공부하고 실제로 학생들과 함께 경험해 오셨지만 스스로가 생각하시는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말씀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 제 생각은 그래요'라고 말씀하실 뿐이다. 어린 아이에게 말씀하실 때에도 깍듯하게 존대를 하시고, 학생들의 하찮은 질문에도 꼭 먼저 이 질문은 이런 점에서 훌륭하다며 먼저 칭찬을 해준다. 크고 작은 사람이 없이 똑같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 하나님 앞에서 모두 연약한 동등한 사람일 뿐이라는 마음이 '겸손함'으로 표현된 것 같다.

두 번째 감동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요즘에야 풀무학교나 생태농업이 주목받고 있지만, 지난 50여년 대부분 시간은 소위 미친놈 소리를 들어오셨다. 모두 도시로 떠나는 때에 농촌을 살리고자, '생각하는 농부'를 길러내는 학교에 온 생애를 바쳤다. 옳다고 생각한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 얼마 전 장가보낸 막내까지 6남매를 가난 속에서 키우셨다. 풀무학교에서는 '일만하면 소, 공부만하면 도깨비'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선생님은 평생 교육자로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책을 쓰며 살아오셨지만, 집에서는 농부이자 나무꾼이다. 아드님 결혼 잔치 날 아침에도 집 앞 논에서 손모내기를 하시던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삶을 꾸준히, 꿋꿋이 살아내는 것만큼 큰 가르침은 없다.

세 번째 감동은 자연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으시고, 따뜻한 감수성을 지니고 계시다는 것이다. 올봄, 파랗고 가운데는 하얀 작은 꽃이 하도 예뻐서 원예 선생님에게 이름을 여쭤보셨는데, 그 이름이 민망하게도 '개불알꽃'이었다. 꽃 이름을 들으시고 며칠을 고민하시더니, '강아지눈꽃'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시고, 그 모양과 이름에 걸 맞는 짧은 이야기까지 만들어 오셨다. 지천으로 피는 잡초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그것으로 이야기까지 만들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참 좋다.

홍선생님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참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보고 느낀 몇 가지로 선생님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송구스럽고, 혹시나 선생님의 모습을 축소하거나 과장하지 않을지, 걱정이 많다. '홍선생님은 이런 분이다' 라고 설명하기보다, 그저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 가까이에서 삶으로 배울 수 있어서 참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게다가 이곳 풀무학교 전공부에는 홍선생님처럼 훌륭하고,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땀 흘리며 살아내는 멋진 농부 선생님들이 여럿 계시니 더욱 감사하다. 

우리 여름이가 홍순명 할아버지를 닮았으면 좋겠다.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농부이자 시인으로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름이가 오래도록 홍순명 할아버지를 많이 뵐 수 있도록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참 좋겠다. 


* 필자 최수영은 12기 가족으로 나들목에서 4년간 지내다, 1월말 충남 홍성으로 이사왔다.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생태농업을 배우는 남편 최문철과 11개월된 아들 여름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고 행복하게,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애쓰고 있다.


+ 나들목교회 월간지 <도시樂>에서 '존경하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청탁을 받아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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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때로 흔들려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by cosmos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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