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뜨거움이 한풀 꺾인 일요일 오후 4시. 어머니와 함께 여름이를 업고 학교 완두콩밭으로 갔다. 고추밭 아래 산소 옆길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는 말만 듣고 걸어갔다. 풀들을 마구 밟으며. 집에서 먹을 만큼 완두콩을 따가라는 장선생님 말씀을 듣고 주말에 바로 따는 게 좋을 것 같아, 여름이 아빠가 목공을 하는 일요일 오후에 학교로 온 것이다.
 
저건 또 무슨 풀밭인가 했더니, 어머님께서 저게 완두콩 밭이라 하신다. 초록이 아니라, 벌써 약간씩 누런빛이 도는 넝쿨들이 밭고랑을 따라 뭉태기지어 늘어서 있다. 팔기위한 콩도, 학교에서 필요한 콩도 대충 다 딴 뒤라 튼실한 완두콩이 얼마나 있으려나 했는데, 넝쿨을 뒤져보니 예상외로 속이 꽉 찬 완두콩 꼬투리가 엄청 많다. 지금도 이만큼이니, 처음 수확할 땐 얼마나 많았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등짝에 업힌 여름이는 힘들고 덥다고 꽥꽥 소리를 지른다. "여름이 힘들다. 그만 해라. 저기 그늘에 가 있어라" 는 어머님의 이야기는 들은 둥, 마는 둥 넝쿨을 뒤져 속이 꽉 찬 완두콩을 계속 땄다. '뭐 업혀 있는 여름이가 힘든가? 요 녀석을 엎고 있는 내가 더 힘들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계속 땄다. 10키로쯤 되는 여름이를 업고 쪼그려 앉았다 일어났다 할 때마다 무릎에서 뚜두둑 소리가 난다. 허리도 아프고. 그래도 계속 땄다.
 
물론, '계속'이라는 말은 한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끝났다. 완두콩 꼬투리를 씹어 먹으며 무료함을 달래던 여름이가 더위에 지쳤는지 잠이 들어 축 쳐졌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땡볕에 엄니 혼자 내버려두고 뒤돌아섰다.
 
일주일 내내 완두콩을 따고, 완두콩을 깠다던 신랑이 떠오른다. 참 힘들었겠다. 정말 참 힘들었겠다. 그런데 참 좋았겠다 는 생각도 든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완두콩을 딸 때마다 뭔지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콩이 많이 열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흠, 이래서 힘들어도 농사짓겠다고 하는구만. 흐흐. 나도 슬슬 농사를 시작해 봐야겠다." 슬슬 그런 마음이 든다. 현욱 형님 말씀대로 그날 딴 완두콩은 참 달콤했다.



*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농부와 인문' 여덟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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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때로 흔들려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by cosmos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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