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고추

2008. 8. 3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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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인 마음으로, 또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밭에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긴 팔, 긴 바지, 장화까지 신고 단단히 차비를 하고 밭으로 나갔다. 고추가 다 망가져 버릴까봐 며칠 동안 계속 걱정이 되었다. 마음 한편에는 제 때 고추를 따지 않아서 고추농사를 망치면 엄니께 혼날 것 같은 생각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며느리의 자격지심. 하여튼 내가 심지도 않았고, 김도 매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추가 망가지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고추 따러 밭으로 갔다. 다행히 샘이 고모가 와서, 함께 밭에 들어갔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인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고추나무마다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들은 대로 아래에서 위로 똑똑 땄다. 빨갛게 된 것만 따면 되니, 생각보다 쉬웠다. 30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한 포대가 좀 안되게 땄다. 덤으로 잘 익은 가지와 토마토도 땄다. 제 때 따먹지 않은 토마토가 여기저기 썩고 있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어떻게 녹색 고추가 완전 보색인 빨간색 고추가 되는지 정말 신기하다. 그리고 참 다행이다. 고추가 익어도 그저 녹색이라면, 나 같은 무식쟁이는 정말 농사지을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빨간색 고추가 '너도 농사지을 수 있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빨간 색으로 변신해주어 고마워, 고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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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게도 빨갛게 변한 고추

 

*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농부와 인문' 숙제 생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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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때로 흔들려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by cosmos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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