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글, 참된 삶

2008. 11. 12. 09:53


-권정생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느님」(개정 증보판)을 읽고


권정생 선생님과 나
빈집이 있다 길래, 집을 보러갔다. 쥐가 뛰어다닐 것 같은 푹 내려앉은 천장, 옷장이 어떻게 들어갔을지 궁금해지는 조그만 방문, 구멍이 숭숭 뚫린 흙 담벼락, 그리고 차마 들어가 보지도 못한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을 보면서,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는 계속 권정생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물코 출판사에 걸려있는 권정생 선생님의 사진도 자꾸 생각나서 마음을 괴롭힌다. 딱 이런 집에서 권정생 선생님은 살았을 것 같다. 여름에 소나기가 쏟아지면 창호지문에 빗발이 쳐서 구멍이 뚫리고 개구리들이 그 구멍으로 뛰어 들어와 꽥꽥 울었다던, 겨울이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함께 들어와 잤다던, 바로 이런 집에서 사셨을 것 이다.

엄두가 나질 않는다. "환경보호운동가도 환경처 공직자도 자동차를 타고 좌변기에 앉아서 똥을 누고 그걸 강으로 흘려보낸다"라는 권정생 선생님의 글에 밑줄을 그을 수는 있지만, 과연 스위치 한번 누르는 것으로 내가 눈 똥을 흔적도 없이 눈 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좌변기' 없이 살 수 있을까. 겨울이면 찬바람 숭숭 들어오는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그러면서 또 내 마음은 불편해진다. 네가 말하는 소박한 삶, 가난한 삶이, 과연 무엇이냐고, 자꾸만 자꾸만 물어온다. 그저 남들보다 약간 소박한 듯한 삶, 조금 가난한 척 하는 삶이 아닌가.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오늘 아침에 먹은 음식과 그리고 무엇을 지니고 있는가 모두가 정당한 것인지 생각해보셨나요? (…) 우리가 알맞게 살아갈 하루치 생활비 외에 넘치게 쓰는 것은 모두 부당한 것입니다. 내 몫의 이상을 쓰는 것은 벌써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니까요.(「책머리에」)
 

참된 생활글
권정생 선생님의 글은 솔직하다. 자신의 부끄러운 삶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참된 생활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권 선생님의 글은, 삶의 신념을 담은 글이요 소소한 일상 가운데서 느꼈던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글이다.

교정지를 받아 다시 읽어보니 거의가 이곳 마을사람들 이야기여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언짢은 일을 새삼스레 떠올려 그분들의 마음에 상처를 끼칠까 걱정도 됩니다.(「책머리에」)

산골이니깐 으레 흙집으로 지었겠거니 상상했는데 뜻밖에도 미국 서부극에 나오는 조립식 모양의 집이었다. (…) 지상 30평은 어차피 석유로 덥혀야 할 텐데 경제사정도 사정이지만 저 먼 중동에서 얼마큼 석유를 실어와야 하나 싶은 것이다. (…) 하지만 모두가 장작으로 방을 덥힌다면 산에 나무가 거덜 날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불편하지만 좀 비좁게 살아야 한다고 나 혼자 결론을 내렸다. (…) 저녁 밥상이 너무 푸짐해서 또 걱정이었다. (…) 바다 생선과 육지 닭까지 진수성찬이었다. (…) 이현주 목사하고 절대 승용차 안 타기로 해놓고 모른 척 두 대의 승용차에 (…) 신선놀음에 끌려갔다 온 기분이다. 아이구! 힘들어라.(「유기농 실천회에 다녀와서」)
 

약자들의 친구, 권정생
권정생 선생님은 김종철 선생의 말처럼, 뛰어난 아동문학가이자 문인이자 사상가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약자들의 친구'라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약자인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였고, 설 곳을 잃은 농부들의 친구였고, 어린아이들과 인간의 이기심에 삶을 빼앗긴 동물들의 편에 서주었던 그들의 친구였다.

1937년 9월 일본 도쿄 혼마치의 헌옷장수집 뒷방에서 태어났다. (…)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처음 시작한 것이 나무장수였고 다음이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그리고 점원 노릇. 결핵을 앓은 것은 열아홉살 때부터였다. (…) 누가 이렇게 물었다. "장가는 못 가봤는가요?" "예, 못 가봤습니다." "그럼, 연애도 못 해봤나요?" "연애는 수없이 했지요. 할아버지 할머니하고도 아이들하고도 강아지하고도 생쥐하고도 개구리하고도 개똥하고도(…)"(「유랑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

함께 일하지 않고 일주일 계속 책상머리에 앉아 설교준비를 해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설교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 가난한 자 곁에서 함께 가난해지는 것뿐이다.(「휴거를 기다렸던 사람들」)
그는 권력 있는 자들과 그들의 세계에 대하여 거의 본능적인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런 감정을 별로 숨기지 않았다. 그 대신 이 세상의 약자들-사람과 사람 아닌 것을 포함한-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연민 혹은 사랑은 측량할 수 없이 깊었다. (…) 소박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삶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데서 권정생의 사상의 깊이와 위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김종철, 「개정증본판에 부쳐」)
 

권정생 선생님과 교회
책 제목 '우리들의 하느님'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권정생 선생님은 자본주의화된 기독교에 대해서 여러 편의 글을 썼다. 쩌렁쩌렁 혼내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통쾌하기도 하고, 스스로 부끄럽기도 했다.

정말이지, 하느님을 더 이상 속이지 말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 예수라는 상표만 붙은 가짜 기독교를 더 이상 퍼뜨리지 말아야 한다. (…) 나는 떳떳하게 모든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나 동물이나 서로 섬기며 살고 싶을 뿐이다. (…) 서로 섬기는 삶이야말로 예수님이 가르쳐준 사랑이며 그것을 위해 피흘려 희생하신 것이다. 이 땅위의 진짜 우상과 마귀는 제국주의와 전쟁과 핵무기와 분단과 독재와 폭력이다.(「우리들의 하느님」)

입으로 설교하는 목회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목회자가 있어야 한다. 밭을 갈고 씨뿌리고 김매고 똥짐을 지는 농사꾼이 바로 이 땅의 목회자다.(「십자가 대신 똥짐을」)

 

전쟁, 그리고 전쟁동화
권정생 선생님은 전쟁, 국가,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주 큰 명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절대로 막연한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내가 서 있는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실제적인, 실천하고 있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그런 글을 썼다.

나는 몇 편의 6․25전쟁을 다룬 동화를 썼지만 어떤 소명의식이나 대단한 애국심으로 쓴 것이 아니다. 단지 잘못된 것에 대해 "아니오"를 말하고 싶었고 그런 동화를 통해서나마 작은 희망을 가져보고 싶었을 뿐이다. (…) 지금 생각하면 이런 것도 어리석고 부질없는 것이며 또 한번 누구를 속이고 있지나 않은지 회의가 생긴다. 몇 권의 책이 출판되면서 인세라는 걸 받을 때마다 그렇고, 전쟁을 팔아먹는 장사꾼처럼 느껴진다.(「영원히 부끄러울 전쟁」)

노벨평화상을 1년에 한명씩 뽑아 준다고 세상이 평화로 지켜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노벨상 재단이 가지고 있는 많은 돈을 차라리 한 맺힌 사람들, 강대국에 의해 학살당하고 빼앗기고 쫓겨난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냥 나눠주는 게 좋겠습니다. (…) 조금씩은 배고프고 춥고 불편하게 사는 게 평화로운 삶이 됩니다. (…) 제발 좀 그만 죽이십시오.(「제발 그만 죽이십시오」)
나는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이 바그다드를 향해 폭격을 하는 전투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수많은 생명이 죽었고 또 죽어가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골프장 건설반대 깃발이 내려지던 날」)

승용차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달아나야 한다. 30평짜리 아파트에서 달아나 이전에 우리가 버려두고 떠나왔던 시골로 다시 돌아가서 15평짜리 작은 집을 짓고 살아야 한다. 가까운 데는 걸어다니고 먼 곳에는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달에 백만원 들던 생활비는 50만원으로 줄어들 것이다. 텃밭을 가꾸고 묵혀 둔 논에 쌀농사 지어 자기 먹을 것은 자기 손으로 농사 짓고, 그리고 남는 시간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뜨개질, 바느질 예쁘게 하면서 살면 된다. (…) 우리 인간들의 풍요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 죄 없는 김씨를 죽이게 한 것이다. (…) 승용차를 버리고 30평 아파트를 반으로 줄이는 길뿐이다. 그래야만 석유전쟁에 파병을 안해도 떳떳할 수 있다.(「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할 수 있다」)

 

농촌을 지켜온 권정생
몸이 아파 고향으로 돌아온 후, 권정생 선생님은 평생 농촌에서 지내셨다. 아이들이나 동물에 대한 관심과 염려도 농촌이라는 배경에서 가질 수 있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농촌에서 농사짓고 사는 것에 대해 애착이 느껴지는 글이 많다. 그것은 단순히 농촌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이 세상이 평화로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농사지으며 자연과 함께 더불어 소박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름, 마을 구멍가게에서 음료수 한 병도 사지 않았다. (…) 한살림에서 무공해식품이라는 걸 잔뜩 사다놓고 왜 이렇게 갑자기 괴로워지는지 화가 또 난다. (…) 가까운 이웃은 다 버리고 먼 데서 깨끗한 음식만 먹겠다고 한 것이 정말 잘 한 것일까? (…) 차라리 죽을 때 죽더라도 이웃집에서, 가까운 장터에서 쌀도 사고 밀가루도 사고 국수도 사는 게 옳지 않을까? 마음 편한 게 위장 편한 것보다 더 소중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정말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용기가 안 난다.(「슬픈 양파농사」)

소한테서 노동을 뺏고 고기를 뺏고 이제는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생식의 절차까지 빼앗아버린 것이다. (…) 그 짓을 당한 태기네 암소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우리가 옛날에 가지고 있던 모든 걸 되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토종똥개도 살리고 토종닭도 살리고 토종돼지도 살리고, 그래서 우리는 본래의 조선사람으로 살아야 한다.(「태기네 암소 눈물」)

도시아이들처럼 공부만 시키고 농사짓는 일은 아예 가르치지 않는다. (…) 이 아이들은 골목길에 돋아나는 풀이름도 모른다. (…) 농촌에서 자라면 이런 구체적인 삶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철에 대한 감각도 별로 없다.(「쌀 한 톨의 사랑」)

인간이 다시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노동하는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몇 사람의 자본가 밑에서 노예 같은 노동을 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푸른 대지 위에서 당당하게 주인으로 일하는 노동자가 되어야만 한다. (…)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노동을 하며 흙에서 살아가는 길만이 진정 녹색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녹색을 찾는 길」)
 
 

쉽지만 쉽지 않은 글
올 해 들어, 권정생 선생님의 책을 몇 권 읽게 되었다. 소설책은 자주 읽지 않는 나는 여기 홍성에 와서야 권정생 선생님의 책을 읽게 되었다. 첫 번째로 읽은 책은 아주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봤던 영상이 생생히 살아있는 「몽실언니」였다. 여름이 재우면서 틈틈이 며칠 만에 다 읽었다. 하지만 동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우울한 내용과 착하게만 그려진 몽실이의 캐릭터 때문인지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참말로 그 유명하다는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맞는지 궁금했다. 처음 「우리들의 하느님」을 전공부에서 빌려 읽을 때에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전쟁, 평화, 가난. 그야말로 거창한 주제에 대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처럼 읽혀졌다.

그런데 「우리들의 하느님」을 몇 번에 걸쳐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권정생 선생님의 글은 참 쉽게 쓰여 있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아도, 혹은 학식이 있든 없든,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게 쓰인, 참 쉽고 참 좋은, 우리말 우리글이다. 그래서 글 자체가 쉽게 읽히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글의 내용까지 가볍게 읽도록 했던 것 같다. 괜히 어렵게 꾸며 쓴 참되지 않은 글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찬찬히 「우리들의 하느님」을 몇 번에 걸쳐 읽으면서,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 과연 '쉽게 살아내기'는 힘든 내용이라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밑줄을 그으며, 선생님을 상상하며, 나를 돌아보며, 선생님의 글을 읽게 되었다.

나에게 권정생 선생님의 글은 쉽지만 쉽지 않은 글이고, 짧은 감동보다는 오랜 불편을 자아내는 글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다시 읽고 싶고 자주 생각나는 글이다. (끝)
 


권정생 선생님은 '강아지 똥'(1969)으로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단, '몽실언니', '하느님의 눈물', '점득이네' 와 같은 백여편의 동화와, 장편소설 '한티재하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 등을 남겼다. 죽는 날까지 다섯 평 남짓한 오두막집에서 혼자 글을 쓰며 살았으며, 모든 인세는 북녘 굶주린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2007년 별세했다.




*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 '농부와 인문' 숙제 생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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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때로 흔들려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by cosmos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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