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미루다 미루다 더 미룰 수 없어 밭에 심은 생강을 캤다. 다행히 생강은 아직 얼지 않았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서 저장이 힘든 생강을 일단 큰 아이스박스에 담아 두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나보다. 이렇게 게을러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제때 농사일을 따라가고 갈무리까지 착착해두는 일은 초보 농사꾼인 우리에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상자나 되는 생강을 어디에 쓰면 좋으려나 도통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가게에서 고작 한 두개 사서, 가끔 고기 요리할때나 써 먹는 생강이 잔뜩 생기니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서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다 생강 농사짓는 선생님께서 생강을 설탕에 재웠다가 겨울 내 생강차로 끓여 먹으면 손발이 따뜻해지고 위에도 참 좋다고 하셨다.

여름이를 일찍 재운 어느 날 밤, 드디어 생강차 만들기 시작. 생강을 깨끗이 씻어서 물을 빼두고, 생강차를 담을 병도 여러개 준비해서 깨끗이 씻고 말려뒀다. 여름이 아빠가 생강을 얇게 썰면, 나는 병에 생강을 한줌씩 넣고, 켜켜이 설탕을 넣었다. 우리밭에서 나온 생강을 직접 하나씩 씻고 다듬어 차를 만드니 너무 뿌듯했다.

남편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두런두런 나누면서, 생강차를 누구에게 줄까 즐거운 고민도 해본다. 주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큰 병으로 5개, 작은 병으로 2개를 만들었다.

농 사지은 것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은, 그 농산물과 함께 해온 시간들, 그리고 우리 손과 발과 마음이 애썼던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정말 행복한 일이다. 뭔가 돈으로 사서 선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년에 꼭 다시 심을 작물로, 고구마, 땅콩, 생강을 꼽아 본다. 겨울이 오기전에 거둬들이는 고구마, 땅콩, 생강은 추운 겨우내 두고 두고 나눠먹기 좋은 든든한 먹거리이다. 심기도 전에 나눠먹을 생각부터한다. 내 땅 한평 없으면서, 마음으론 벌써 한해 농사 다 지었다.


- 나들목교회 <도시락> 3월호에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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