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부터 남편이 재원형님댁으로 출동했다. 형님께 기타도 가르쳐 드리고, 닭도 몇마리 잡기로 했다. 전공부(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에서 기르던 닭들을 겨울동안 재원 형님댁에서 키우고 있다. 그 중에 알을 잘 낳지 않는 몇마리를 잡기로 한 것이다. 지난 학기 닭을 잡아본 남편도 칼을 들고, 닭잡는 전문가이신 전공부 선생님도 한 분 오셔서 다섯 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재밌는 사실은 알을 잘 낳지 않는 것 같은 닭들을 잡았는데, 하나같이 뱃속에 달걀이 들어있었단다. 

저녁이 되어 여름이랑 저녁먹으러 재원 형님댁에 가니, 마당에는 큰 압력솥에 닭도리탕이 끓고 있다. 몇은 사랑채 아궁이에 불을 떼고, 몇 몇은 재원 형님이 모아오신 레코드로 음악을 튼다. 닭도리탕이 익는 동안, 아랫목에는 몇명이 10원짜리 화투를 치고, 영미언니, 그리고 여름이와 나는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 방에서 할머니 드시라고 사가지고 간 한과를 다 꺼내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여름이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래 맞춰 춤도 잘 춘다. 할머니도 기분이 좋으신지 이런 저런 말씀을 곧잘 하신다.

닭 잡는다는 소문이 온동네에 나서 결국 닭 다섯 마리를 열댓명이 먹게 되었다. 닭도리탕과 김치 그리고 맥주, 푸짐하게 한 상 차려졌다. 긴 겨울 어떻게 보내는지 서로 안부도 묻고, 시시한 우스개 농담에도 다같이 박장대소하고, 술잔도 오가고.. 그야말로 풍성한 밥상이다. 상을 물리고선 뜨끈해진 사랑채에 다같이 모여, 윷놀이를 했다. 윷이요, 모요, 다같이 추임새도 넣고 서로 상대편 말 놓는 것에 이래라저래라 말도 많고 괜히 떼도 부려본다. 여름이도 잘 던진다.

오래간만에 함께 모여, 먹고 웃고 떠드니 사람 그리웠던 마음이 아랫목처럼 따뜻이 풀린다. 우리도 어서 시골에 작은 집 한채 마련해서 아랫동네 웃동네로 밤마실 다니며 지내고 싶다. 누구라도 쉽게 와서 함께 일하고 먹고 놀고 쉬다 갈 수 있는 집이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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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 잡고 술 먹세 존게 좋소. 어기어라 존게 좋소' 는 결성농요 중, 논일 마치고 들어가며 부르는 나들이 노래 한 대목이다.




- 나들목교회 <도시락> 3월호에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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