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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친구 한빛이와 민들레로 장난 치며 노는 여름이


'심, 심' 여름이가 모종 포트를 하나 집어들고, 어서 '심자'고 '심(자)', '심(자)'를 외쳐댄다. 모종삽으로 흙을 파고, 물을 충분히 뿌리고 모종을 하나 조심스레 놓고, 다시 흙을 덮어주고 슥슥 톡톡 두드려준다. 초보 농사꾼 여름이와 나의 5월, 6월은 이렇게 캐모마일도 심고, 토마토도 심고, 바질도 심고, 고추도 심고, 해바라기도 심고, 옥수수도 심으며 보냈다. 아차, 열심히 풀도 뽑고, 파리도 잡으면서.
 
그저께까지 5주간 실습주간을 보낸 여름이 아빠도 엄청 바빴다. 오전에는 인문학과 이론 공부를, 오후에는 농사실습을 하는 평소와 달리, 농사량이 많아지는 몇주간은 '실습주간'이라는 이름으로 아침 8시 30분부터 해질녘 저녁 7시 반 넘어까지 농사일을 한다. 그 사이 개인 실습논을 경운기로 직접 갈고, 논에 물을 대 모내기도 하고, 잡곡 파종도 하고, 전기 양수기를 대신 해서 사용하려고 태양광전지와 수중모터를 구상하고 논에 설치하기도 했다. 첫 환금작물로 유기농 완두콩을 따서 팔기도 했다. 주말이면, 엄니 댁 밭에 가서 밭 갈고 퇴비 뿌리고 감자 심고, 땅콩 심고, 밭 갈고 멀칭하고 고추 심고, 생강도 심고, 참외도 조금 심고, 가지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오이도 심었다. 나는 학교생협에서 리플렛도 만들고, 드디어 홈페이지도 새롭게 열었다.
 
그 사이에 여름이 동생이 생긴 것도 알게 되었고, 여름이는 정든 엄마 쭈쭈와 안녕하고 씩씩한 어린이로 잘 크고 있다. 떼 한번 크게 부리지 않고 잘 이해하고 스스로 노력하며 약속대로 모유를 끊는 모습이 참 대견하고 고마웠다. 
 
봄이 되어서인지 도시에 사는 친구들도 많이 다녀갔다. 5월 첫주부터, 6월 첫주까지 7팀이 매주말마다 다녀갔다. 그 가운데는 우리가 잘 아는 친구들도 있고, 친구를 따라 온 낯선 분들도 계셨다. 6월 첫 주를 지나면서 피곤한 마음에, 몇 달간은 손님을 받지 않겠노라고 남편과 약속했지만, 또 놀러오겠다는 연락을 받으면 어느새 또 어서 오라는 대답을 하게 된다.
 
손님들이 왔기에, 한국에서 아름다운 길로 드라이브도 다녀오고, 이때 아니면 못 먹는 새조개도 먹어보고, 서해안 일몰도 실컷 볼 수 있었던 여유를 가졌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농부는 일요일이라고 쉬고, 공휴일이라고 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맑은 날에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비오기 직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단 며칠이라 해도 때를 놓치면 심지 못하는 작물도 있고, 제대로 거둘 수 없는 작물도 있다. 그래도 손님들 덕분에 그 바쁜 사이에 쉬기도 했고, 손님들 때문에 때를 놓친 것은 크게 없으니 다행이다.
 
대부분 손님들은 우리를 보고싶어하는 마음에 여러가지 불편을 무릎쓰고 이곳까지 온다. 나 역시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에 누구라도 연락이 닿으면 집에 놀러오라는 말을 먼저 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곳보다도 여기 자연과 마을이 그 친구에게 잔잔한 쉼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도시 친구들에게 농촌이 항상 여유롭기만 하고, 언제든 원하면 쉬어 갈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질까 두려운 마음도 있다. 농촌은 도시 사람들이 와서 쉬어가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치열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고, 진지한 일터이기 때문이다.
 
도시 사람들에겐 간만에 긴 휴가가 주어지는 즐거운 여름이다. 하지만 농부들에게 여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라는 풀과 논에서의 김매기, 뙤약볕이 기다리고 있는 계절이다. 고된 노동으로 밤마다 몸이 아파 잠을 잘 못자는 계절이기도 하고, 온 몸이 벌레와 풀에 상처가 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누가 뭐래도 밤 10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리는 고단한 계절이기도 하다. 도시를 떠나 한적한 휴가를 계획할 때, 개구리와 매미 소리 외에는 고요하게만 보이는 농촌의 여름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잠시 상상해보았으면 좋겠다.
 
덧붙여, 이 글을 읽고 힘든 농촌 도와주겠다는 기특한 생각으로 이번 여름 휴가는 농할(농촌 봉사활동)을 가겠다는 계획은 제발 세우지 마시길. 실상 도시 사람들이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고, 끼니마다 밥상 차리는 것이 농촌에 사는 사람들에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농촌에 놀러 오려면, 며칠간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나, 사람이 엄청 그립고 밤이 긴 겨울철에 와 주시면 참 좋겠다. 반가운 손님을 더욱 반갑게 모실 수 있을 것 같다.
 
넋두리가 길었지만 '누구라도 쉽게 와서 함께 일하고 먹고 놀고 쉬다 갈 수 있는 집이었으면 참 좋겠다'라는 나의 바램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기에 충분히 넓고 좋은 시골집에서 살고 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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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물에서 신나게 놀다 온 여름이



나들목교회 월간 [도시樂] 7월호에 들어 갈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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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때로 흔들려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by cosmos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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