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만남

2012. 1. 21. 03:10


'그냥 들어가 앉아 있어. 추워.' 
내가 사 가지고 간 단감 하나 깎아 드시고는,
밥 부터 먹고 이야기 시작하자고 또 부엌에 나가 밥상을 차려오신다.
새로한 밥에 메밀묵, 곰탕, 김치, 며느님이 해오신 메추리알과 꼬막 고치 반찬.
직접 농사지은 메밀로 만든 메밀묵이 묽게 되었다 하셨지만, 맛있어서 꿀덕꿀떡.
참, 밥먹기전에 할머니가 만드신 조청도 담아주셔서 맛을 보았지.
할머니의 특제 차도 한잔 마시고. 지난번엔 커피도 타주셨는데 오늘은 양파껍질, 생강 등을 끓인 것만 가지고 오셔서 아이구 매워라 속으로만 생각하면서 먹었지.

홍동에서 광천, 광천에서 할머니집까지 두번 버스를 갈아타고 좀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승용차로 가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리를.
2시간 가까이가 걸려서 갔다.
월림리로 가는 버스를 놓친 것인지 또 30분이상을 기다려 장곡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은 할머니만 만나는게 아니다.
할머니가 만든 음식을 먹고.
할머니가 농사지은 밥을 먹고. 
할머니가 다니는 길을 걷고
할머니가 타시는 버스를 타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의 마중을 뒤로 하고. 
할머니를 만난 나를 돌아보며. 
그렇게 오가는 길. 
욕심부리지 말고, 겸손하게 한걸음씩. 할머니를 알아가고 배워가자. 

내가 좀 재밌게 살아왔지?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웃긴 여자야.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냥 하나님이 그자리에 나를 세워두셔서 그렇게 살아 올 수 있었던 것 같아. 정말 신기하지? 나도 어떻게 살아왔는지 참 신기해. 
생일날? 평일이라서 애들이 아무도 못왔어. 
그래도 큰 며느리가 아침 차려놓고 오라고 전화왔는데, 아침부터 가기가 귀찮어. 점심이나 저녁때 갈께 했더니, 또 생일상을 차려가지고 왔더라고. 
지금 소원은
다른 사람들, 자식들한테 폐끼치 않고 끝까지 살아가는 거. 그거 하나만 기도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삶이지만,
그래도 부끄러울 것은 하나도 없게 살아 왔어.  
그래, 또 와. 나도 이야기 하니깐 재밌네. 
다음에는 버스 시간 잘 알아보고 추운데 많이 기다리지 말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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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때로 흔들려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by cosmos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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