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다. 소문도 좋아하고, 뒷말도 좋아하고, 비밀이야기도 좋아하는 나, 솔직히 흥미로웠다. 유사연애에서 언제 진짜 연애가 펼쳐질까 내심 기대도 해보았으나, 이야기는 내가 원하는 대로 흥미롭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나더러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얘기부터 할 수 밖에 없다. 참 쓰라림도 많았던 부엌세간, 흔히 썩어버린 동물들, 그리고 내 무거운 영혼의 얘기부터”라고 인용한 글처럼, 창부의 역사도 무거운 영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스스로 살아왔던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분석하는 모습을 읽으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내가 가진 남자의 이미지, 여자의 이미지, 두려움, 공포, 불안감이 떠오른다. 창부의 역사와 나의 역사가 시소를 타듯 오르락 내리락 한다. 스스로의 임상역사를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창부의 역사 한 자락, 한 자락을 대하면서, 잊고 있던 저 밑바닥에 꾹 눌러뒀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친구와 함께 걸었던 산책길, 주고 받았던 편지, 외롭고 쓸쓸했던 날, 무서웠던 기억들, 그래도 그리운 순간들. 토양은 비슷했으나, 씨앗은 달랐고 그 열매도 달랐다. 쓸쓸함, 고독, 특별한 관계에 대한 갈망은 비슷했으나, 스스로 다독이며 살아온 방법은 달랐다. 


<심리적 사랑>부분에서 임상역사를 쓰고 있는 창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드러나는 것 같다. 노트북만 보고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노트북에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천장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신선한 시도였다. ‘우리가 할 일은 보다 깊이 들어가서 심층에서 사유하는 것입니다. 심층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다 보면 표면에서 일어나는 것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 부분을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습니다.(60)’ 겉으로 드러난 역사보다, 내 마음을 흘러온 역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누군가에게 나를 알리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기 위해, 나를 제대로 돌아보기 위해 임상역사를 시작한 것이니 말이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무의식적 반복이 아니라, ‘의식적 임상관찰보고서’가 출현하는 여정이라고. 왜냐하면 하나의 역사를 썼기 때문인데, 이렇게 쓰여지고 공포된 역사는 유아기의 맹목적 습성과 현재의 사회적 권력을 결합시키는 행위가 부자연스러운 것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68)’라고 쓴다. 나 역시 임상역사를 시작하면서 기대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무의식적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조금 다른 차원으로 나를 옮겨놓고 싶은 마음. 그리고 창부가 ‘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 자기를 신뢰하는 것(69)’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임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조금 다른 장을 펼치면서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깨닫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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