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2017. 3. 8. 01:52

< 우리 집 > 


이제 곧 다섯 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다. 우리가족은 6년 전 늦가을, 이 집으로 이사 왔다. 포대기에 업고 이사 왔던 둘째 아이가 곧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밭이 필요했던 우리에게 동네 어르신이 소개해 준 집이다. 이전에 살던 집이 크고 깨끗했지만 전세가 비싸고, 둘레에서 밭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개받은 이 집은 볕이 잘 들지 않아 어둡고 습한 오래된 집이었지만, 집에 딸린 텃밭이 무척 아름다웠다. 손이 부지런하고 눈이 고우시던 할머니는 밭 둘레에 온갖 꽃과 나무를 심어두셨다. 이 집에서 살던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할머니가 가꾸시던 나무와 꽃은 남아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봄에는 수선화를 시작으로 매화와 앵두꽃이 폈고 가시오가피 순과 두릅 순은 봄을 알리는 반찬이 되어 주었다. 밭에는 봄마다 달래, 냉이가 쑥쑥 올라왔다. 여름에는 풋대추를 따먹고 보리수 열매를 거두어 술을 담그고 잼을 만들어 먹었다. 가을에는 앞뜰 뒤뜰 감나무에 감이 열렸다. 늦가을에는 은행나무 열매 냄새와 모과 열매 향기가 묘하게 섞였다. 밭에서 우리가 기르고 가꾼 것보다, 할머니가 남겨주신 나무와 꽃, 열매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가만히 방에 누워있으면 뒤뜰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창문을 열면 청설모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웃풍이 심한 옛날 집이라 겨울에는 거실에 나무난로를 두고 불을 지폈다. 겨울 내 짬짬이 나무를 자르고 쪼개는 것이 남편의 일이었다. 난로에 불이 잘 붙지 않으면 온 집안이 오소리 굴처럼 연기가 가득했고 눈이 매워서 방으로 피신했다. 난로에 불이 잘 붙은 날에는 난로 속 발간 불빛만 보고 있어도 참 따뜻했다. 감나무 옆에는 닭장을 지어서 닭을 키우고 토끼를 키웠다. 며칠 집을 비우는 날에는 동네 친구들이 들러서 토끼풀, 닭풀을 뜯어주고 갔다. 도시에서만 자랐던 내가 암탉 소리와 수탉 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농사짓고 청소년들과 수업하고 들어오는 남편을 위해서 하루 3끼 밥을 차렸던 시간들,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이 내게는 너무 버거워서 울고 화내고,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날들도 많았다. 오래되고 낮은 집이라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습했다. 장마철에는 옷장에 넣어둔 옷에도 곰팡이가 생겼다. 습하고 더운 집에 들어오기 싫어서 긴 여름 해가 다 넘어갈 때까지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늦게 집에 들어오곤 했다. 오래된 시골집이라 여기저기 쥐가 구멍을 뚫고, 천장에서는 쥐들이 뛰어다녔다. 거실에서 쥐와 마주치고 까무러치기도 했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게 이런 것이겠지. 이집에서 지냈던 6년의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면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따뜻하고 아름답고 맛있는 기억이 많아서 다행이다. 


지난 봄, 새로운 집터를 마련하고 여름부터 집을 짓기 시작했다. 쥐가 뚫지 못하게 튼튼하게, 바람이 새어 들지 않는 따뜻한 집을 지었다. 건축은 동네 목수 친구들이 맡아주었다. 모자란 돈은 담보 없이 ‘도토리회(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이 모은 협동기금을 이용하여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협동조합형 마을은행)’에서 빌렸다. 집터도 친구가 땅을 저렴하게 내주어 마련할 수 있었다. 마을에서의 삶이 항상 그래왔듯이, 집을 짓는 과정도 동네 친구들, 형님들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가난하고 행복하게, 소박하고 아름답게’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표어를 내걸고 결혼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고 학교 소강당을 빌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결혼식을 올렸다. 가난하고 싶었지만 실상 나는 가난하지 않았고 가난이 뭔지도 몰랐고 가난하지도 않았다. 가난하게 살겠다는 목표가 얼마나 배부른 소리였는지 뒤늦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사를 앞둔 내 마음에는 부끄러움이 있다. 가난하게 살겠다고 했는데, 으리으리한 새집으로 이사라니. 이젠 가난한 척하기도 틀렸다. 


어쩌면 내 생애 마지막 이사일 수도 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볕이 잘 드는 내 집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 가난하게, 혹은 아름답게 살겠다는 목표는 버렸다. 그저 열린 집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을이 우리 가족에게 큰 품을 내어주었듯이, 우리 집이 누군가에게 열린 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동네 아이들이 놀다 가는 집, 피곤한 친구들에게 낮잠을 선물하는 집, 시원한 맥주 한잔에 눈물이 웃음으로 바뀌는 집. 이 정도 바람은 가지고 살아도 되겠지. 이제 농사지을 땅도, 평생 맘 놓고 살 집도, 어디 도망 못 가게 나를 잡아줄 빚도 생겼으니. 그 정도 바람은 가져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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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때로 흔들려도 꿋꿋하게 그 자리에 by cosmos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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