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여론국(DPI)은 지난 15일 웹사이트를 통해 언론이 외면하거나 소홀히 다뤘지만 국제사회의 관심이 절실한 문제 10개를 제시한 ‘잊힌 이야기들(Forgotten Stories)’을 발표했다.
유엔이 2004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잊힌 이야기들은 국가별 인도주의적인 비상상황과 분쟁 또는 분쟁 이후 상황을 주로 담고 있다. 대부분 언론이 한번도 보도하지 않았거나 보도했더라도 중요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뤄진 이슈들을 선정 대상으로 한다.
올해 첫번째 잊힌 이야기로는 라이베리아가 꼽혔다. 유엔은 라이베리아가 최초의 여성대통령 엘렌 존스 설리프의 취임과 독재자 찰스 테일러 전 대통령의 체포로 힘겹게 평화과정을 시작했지만 정작 주민들은 인도주의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4년간 벌어진 내전과 내전 이후 종족간 유혈충돌, 부패 등으로 라이베리아의 국가기능이 정지돼 어떤 형태의 대민 서비스도 불가능한 상태라는 설명이다.
주민 대부분은 전기와 수도, 위생 및 보건시설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국가부채는 37억달러에 달하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80년 1,269달러에서 지난해 163달러로 곤두박질했다. 두번째로는 국가안보 강화라는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인해 국제적인 보호가 시급한 난민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실상을 지적했다. 유엔은 경제적 이유로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불법이민자들과 인도적 이유에서 탈출한 난민들 간에 구별이 흐려지면서 난민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각국이 난민을 꺼리는 ‘난민 피로증’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근 5년 동안 4백만명이 내전 와중에 희생된 콩고민주공화국은 오는 7월 첫 지방선거를 앞두고 평화가 정착되고 있지만 역시 주민생활은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고 유엔은 전했다. 병원과 학교, 공장, 철도는 폐허로 변했고 매일 1,200명의 주민들이 예방 가능한 질병과 사고로 숨지고 있다.
갸넨드라 국왕을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는 히말라야의 은둔국 네팔이 모처럼 국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네팔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마오주의 반군들과 정부군의 교전으로 어린이 4만명이 부모품을 떠나 인권 유린 상황에 처한 점은 부각되지 않고 있다. 소말리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잊힌 이야기로 선정됐다. 8백만명의 주민이 가뭄으로 여전히 식량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은 길게는 무려 25년 동안 난민촌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 세계가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전세계 9백20만명의 난민 가운데 5백70만명이 33개의 ‘오래된 난민촌’에서 비참한 생활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간 물분쟁이 각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동전의 다른 면인 물을 통한 협력 사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점도 꼽혔다. 유엔은 물은 역사적으로 분쟁의 뇌관이 되기보다 협력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경우가 더 많다고 강조했다.
코트디부아르에서는 현지 언론들이 종족간, 지역간 갈등을 부추기는 왜곡보도로 피의 분쟁을 확산시켜온 점이 부각됐다. ‘미디어의 증오’가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동시에 평화구축에 최대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남아시아 쓰나미 피해 국가들의 재건 문제, 정당한 이유없이 수감시설에 갇혀 인권을 짓밟히고 있는 어린이 재소자들의 인권문제도 올해의 잊힌 이야기로 꼽혔다.
샤시 타로르 유엔 여론담당 사무처장은 “언론과 유엔은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리려는 관심을 공유하고 있지만 기자들은 종종 대중 또는 언론 스스로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에만 파묻힐 때가 있다”면서 잊힌 이야기 발표의 취지를 설명했다. 잊힌 이야기의 상세한 내용과 자료는 유엔 홈페이지(www.un.org/events/tenstories)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경향신문 2006-05-17 18:30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