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나다
Riches for the Poor - The Clemente Course in the Humanities
Earl Shorris


1. 가난한 사람들과 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을 4년간 해왔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아니 나의 일을 통해 기대했던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러니깐 이스라엘-이집트, 카자흐스탄, 방글라데시에서의 시간들을 통해서 나는 무엇보다 생각이 바뀌어야 삶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을 강하게 해왔다. 특히 방글라데시에서 수많은 NGO들이 실패, 궁극적으로 빈곤에서 탈출하도록 돕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거지근성만 키워주는 NGO들의 실상을 보며. 생각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이들의 삶이 변화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생각을 바꿔준다는 것은 '기독교세계관'을 가지게 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결론은 그들이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식량, 또 내일을 살아낼 수 있는 기술이나 교육과 함께, 반드시 복음을 전해 기독교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 말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국제구호단체에서 몸담은 지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해왔나? 내가 속한 조직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변화의 성공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나?


2. 희망을 만들어내는 인문학
<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마음과 열정으로 인문학교육, '클레멘트 코스'를 시작했다. 얼토당토 않아 보이는 철학, 역사, 문화, 논리학 교육을 받으면서, 뒷골목에서 매일 생계를 위협받으며 근근히 살아가던 사람들은 스스로의 존엄을 찾아가고 희망을 갖게 되고 꿈을 갖게 되고 대학에 진학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간다.

그 꿈은 얼쇼리스가 감옥에서 만난 비니스라는 여인과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비니스는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때 비로소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무력의 메커니즘의 영향력 한복판에서 벗어나 공적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성찰적 사고능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3. 함께하는 사람들
'클레멘트 코스'는 학생(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함께하는 교수들과 직원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까지 자발적으로 이끌어내는 '기적'을 만들어갔다. 아내 실비아 쇼리스, 마틴 켐프너, 실력있는 교수진들, 스스로 동기부여되어 캐나다, 유카탄, 멕스코에서 문화에 맞게 클레멘트 코스를 받아들이고 변형시키고 실천해온 사람들. 코스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학생들의 생활전반을 도와주는 상담치료사, 그리고 그곳에는 학생들을 정말 사랑하는 진짜 선생님들이 있었고, 자신의 활동에 스스로 충분히 동기부여되어 자본과 지지프로그램을 만들어갈 수 있는 활동가들이 있었다.

일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조직을 위한 조직이 아니었다.
사람을 위해 일하고, 사람을 위해 조직이 만들어졌다.


4. 교육이란?
클레멘트 코스의 교육 방법은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으로 마치 산모의 출산을 돕는 산파처럼 학생들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방식이다. 교재가 될 만한 내용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학생들의 관심사를 찾아내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돕는 것이 교사의 역할로 정의한다. 학생들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그 어려움과 씨름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그런 면에서 나는 행운아이다. 물론 클레멘트 코스처럼 일련의 과정으로 만들어진 철학, 논리학, 예술에 대한 공부를 체계적으로 한 적은 없지만, 대학 시절 좋은 책들을 소개 받아 읽게 되고 서평을 쓰고 나를 돌아보며 자라온 것 같다. 특히 '서평쓰기' 숙제를 통해,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곰곰이 생각하게 하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왔던 것이 이후 나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쳐왔는지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이 초등학교를 비롯해 공교육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한국도 좀 더 희망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5. 다시금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클레멘트 코스는 단순히 지식 전달이 아니다. 학생들의 가능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력있는 교수들이 필수요건이다. 그러나 교육적 인프라가 집약되어 있는 도시가 아닌 시골이나 농촌의 경우 클레멘트 코스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구호단체의 경우 어떻게 극빈국의 교육자들을 동기 부여하여 이런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의문이 떠오른다. 그러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그 성과가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게 된다.


6. 모두를 위한 인문학
지난주 충남 홍성 <풀무학교>를 방문하며 느꼈던 감동이 떠오른다. 20대 중반부터 일흔이 훨씬 넘은 현재까지 훌륭한 교육자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오고 계신 홍순명 교장선생님. 삶을 가르치며, 학생들을 격려하고, 스스로 성취하도록 돕는 역할이 교사의 역할이지 않겠냐고 했던 모습이 클레멘트 코스의 교수법과 다시금 오버랩되었다.

생각하는 농민을 키워내기 위한 풀무학교는 지난 49년간 교육에 힘써왔고, 학교 교육 뿐 아니라 주민들을 위한 유기농법교육, 마을과 연계한 교육, 마을 도서관 운영, 무인가게 운영, 마을화폐, 지식품앗이 등을 자연스럽게 마을에 뿌리내리도록 해왔다. 그리고 2001년부터는 고등학교 졸업자를 위한, '풀무환경농업전문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농업에 종사할 뿐 아니라 가치관과 교양과 실무 능력을 갖추어 '생각하고' 일하는 농민을 기르기 위해, 유기농법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읽기, 한국사, 세계사, 세계종교에 대해 함께 배운다.

풀무학교는 한국적 농촌 대안교육의 모델이지만, 동시에 인문학, 생각하게 하는 교육의 힘이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클레멘트 코스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한 대안이 아니다.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맹목적으로 소비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 우리 모두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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