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2011. 10. 31. 00:27

감을 찧다가 먼 산을 쳐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삶은 그냥 살아가는 거지
세월의 흐름을 따라서
함께 하는 이웃들과
오늘 땀을 흘리며

산과 하늘 구름과 나무가
늘 변하지만 한결같은 것처럼
사람 또한 긴 사람의 흐름에서
늘 변하지만 한결같다.

그 한결같은 사람의 흐름에서
난 잠깐의 새로운 변화다
담담히
삶을 살아간다.

이천삼년 팔월 십삼일 저녁. 변산에서 명진이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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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고, 또 흔들리지만..
우리의 뿌리는 그분께 있다.
언니를 만나게 해준 한동의 어느 한자락
참 소중해. 참 고마워. 
언니는 이미 내 일부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2005년 5월 23일. 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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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픈 수영~ 
입사 2주년을 축하하오. 함께 하지 못해 아쉽구. 
늘 제자리에 있다고 슬퍼하지마. 
그것보다는 어떤 자리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가 중요하잖아. 
적어도 수영이 바른 자리에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살. 
수영의 앞날을 축복하며 

먼곳에서 찬재. 
2005.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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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문득 언니 생각이 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혹시 우리 가을에 만났수?
가을이 도토리 철인가? 
어쨋든 다람쥐 생각이 나
몇자 띄우우...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구랴
사랑을 버무려
도톨 씀.

이천오년시월 이십이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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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수영아!
지혜롭고 마음이 깊고 따뜻한 수영이.
동생이지만 의지가 되어 힘이 되는 아이.
그녀의 웃음, 그 소탈하고 진실하며 귀여운 웃음.
먹을 때 오물거리는 모습^^ 사랑스러워!

내 노트에 있는 너에 대한 마음이다.
생일을 축하며, 결혼을 축하하며..
이제 새로운 2막을 준비하고 열어가는 네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구나.
훌쩍 커버려서 품안에 두기 어려운 동생을
멀리 보내는 마음이 들어 한동안 섭하고 찡했었어. ... 
사랑하고 사랑한다.

May 17th 2006. 혜영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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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반복되는, 별 거 없는 일상.
하지만 나의 바닥을 드러나게 만드는 지치는 일상들.
감당하기에 벅찬 일상. 
그 가운데 헉헉거리다가. 

십대때 듣던 오래된 음악들을 찾아 들으며 피식피식 웃고. 
먼지 푹 싸인 편지함에서 오래된 편지들을 꺼내 읽었다. 
고마운 사람들. 지금은 너무 멀리 있지만.
그래도 편지를 읽는 것만으로 잔잔히 위로가 스며온다. 
보고싶다.  



 
 

하세가와 키세이가 번역하는 동종요법 책에 들어갈 글이다. 동종요법을 사용해온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 하나로. 글을 쓰다보니 좀 길어졌다. 너무 길어졌나?^^;; 글을 쓰다보니 그동안 여러모로 도와주고 옆에 있어준 하세가와 키세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몽글몽글! 고마워요. 키세이상! 난 뭘로 보답할 수 있으려나?... 살다보면 갚을 날도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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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자라며] 

동종요법 레메디를 알게 된지 벌써 4년째가 되었다. 남편과 함께 7개월 된 아기 여름이를 데리고 홍동으로 내려온 지도 이제 만 4년이 되어간다. 서울에서 여름이는 몇 주에 한번씩 꼭 밤늦게 깨어서 몇 시간씩 눈도 안 뜨고 울곤 했다. 첫 아이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약이 병을 만든다(소담출판사)'라는 책을 읽었고, 산부인과가 아닌 조산원에서 여름이를 낳으면서 가능하면 병원이나 일반적인 약에 기대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워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감기나 열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홍동에서 노야와 사라 엄마, 하세가와 키세이씨를 만났다. 나보다 먼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많이 되었다. 그러다가 동종요법 레메디를 소개받게 되었다. 자다가 일어나 심하게 울거나, 이가 나면서 많이 보챌 때, '캐모밀라(캐모마일로 만들어진 레메디)'를 입에 넣어주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몇 분 지나니 여름이가 진정되고 쌔근쌔근 잠을 잘 자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몇 번하면서 하세가와 키세이씨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동종요법 기본 키트를 사고, '동종요법 바이블(국제출판사)'이라는 책을 사서 조금씩 동종요법 레메디를 사용하게 되었다. 실상, 여름이는 두돌반까지 심하게 아픈 적이 없었다. 감기에 걸리면 감입차도 먹이고, 각탕(족욕)도 하고, 동종요법 레메디도 먹으면 삼일정도면 감기도 거뜬히 이겨냈다. 예방접종을 안했기 때문인지 고열로 고생한 적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세살이 되어 동생이 생기면서 스트레스가 많아져서인지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물렁종의 일종이었는데 가려워하기도 했고, (피부전문병원에서는 아토피는 아니지만, 아토피 소인이 많은 아이라고 진단했다. 육류, 개털, 고양이털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다) 그해 여름에는 벌레 물린 곳에 상처가 깊어져서 농가진이 되어서 항생제를 며칠 먹기도 했다. 그런데 항생제를 먹이니 부작용으로 일주일 내내 설사를 했다. 이전에 한번도 배탈이 난적이 없었는데, 정말 많이 힘들어했다. 다행히 피부과 의사선생님을 잘 만났던 것 같다. 항생제나 스테로이드 약으로만 치료하려고 하지 않고, 기본적인 보습의 중요성을 알려주시고, 달맞이꽃 종자유(감마리놀렌산) 등을 처방해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단 물렁종이나 농가진은 진정이 되었지만, 피부로 이렇게 드러나는 것 아래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장기적으로 알레르기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세가와 키세이씨와 의논을 하다가, 일본에 계신 마리오 언니를 소개 받았다. 마리오 언니는 일본에서 동종요법 치료자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임상 연구과정으로 여름이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고 전반적인 처방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아직 공부하는 중이기 때문에, 진료비는 없이 처방되는 레메디비용과 배송료만 지불하면 된다고 했다. 

마리오 언니가 보내주고 하세가와 키세이씨가 번역한 동종요법 질문지는 20장 이상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 여름이의 피부 상태 뿐 아니라, 평소 식습관, 수면 습관, 정서적인 상태, 최근의 급격한 변화가 있었는지, 부모와 조부모의 병이나 먹었던 약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 등 병원에서는 한번도 받아 본적 없는 자세하고 통합적인 질문지였다. 한국에서 동종요법으로 치료를 받을 때, 진료비가 꽤 비싸다고 들었는데 납득이 갔다.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것도 큰 원인이겠지만, 이렇게 자세하고 통합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살펴 처방을 하기 위해서는 한 환자에게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이 들기 때문이다. 

여름이는 첫 번째 레메디 처방을 받아서 한달정도 먹고, 상태를 살피면서 3번 더 처방을 받아 레메디를 먹었다. 처음에는 진정되었던 가렴움이 더 심해지기도 했고, 정서적으로도 표현되는 부분도 많았고, 밤에 발버둥을 치며 우는 날도 며칠 있었던 것 같다. 처음 2주 정도가 제일 힘들었는데 이전에 억압된 부분이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마리오 언니나, 하세가와 키세이씨가 중간 중간 아이의 상태를 물어봐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레메디를 안내해주고, 같은 엄마로써 '수영씨 힘내세요.' 라고 말해줘서 참 고마웠다. 

아이가 아플 때, 엄마는 아이에 대해 불안한 마음과 엄마로써 내가 뭘 잘 못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함께 가지는 것 같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이런 심리적인 압박으로 더욱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같은 엄마로써 힘을 주고, 좋아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함께 기다려보자고 이야기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지금 다섯 살인 여름이는 알레르기 반응 없이, 가려움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밥에도 잘 자게 되었다. 이번 여름에도 벌레에 많이 물렸지만, 농가진으로 발전한 것은 없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었다. 생후 6개월쯤부터 있었던 손톱 아래 사마귀가 4살 때는 3개로 늘어나서 냉동치료를 받아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레메디 처방을 받으면서 3개 모두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6개월이 안되는 시간동안 여름이의 면역이 엄청 좋아졌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과라 생각된다. 

우리집에서는 일단 아프면, 동종요법 책을 읽어보며 적절한 레메디가 있는지 찾아본다. 여름이도 그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지 상태를 확인한다. 감기, 고열, 수두, 수족구 등을 병원약 먹지 않고 잘 지나갔다. 동종요법 만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플 때, 각탕을 하거나, 겨자습포를 하고, 감잎차나 허브차를 마시거나, 녹두죽을 끓여 먹고, 뜸을 뜨거나 침을 맞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부분이 많다. 이와 같은 것을 하기 어려운 어린 아가들에게는 동종요법이 더욱 고마운 처방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조금 큰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면 이런 것을 하면서 동종요법을 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아직 과학적으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동종요법이 효과적임을 증언하고 있다'는 '동종요법 바이블(p13)'에 나오는 글처럼, 동종요법은 과학적으로 답을 하거나, 나와 같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임상적인 치료의 결과가 분명히 있으니 사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실상 우리 삶에 중요한 것, 예를 들어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거나, 엄마의 뱃속에서 아기가 자란다거나, 숨을 쉬는 것과 같은 일은 과학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니니 말이다.  

이 책은 지난해부터 1년 이상 매주 2시간씩 동종요법 공부모임을 함께 하면서 조금씩 번역을 했던 것이다. 동종요법 레메디에 대해서도 배우고, 아이들이 어릴 때 거쳐가는 소아병, 병이 무엇인지, 면역이 무엇인지, 예방접종에 대해서도 함께 공부했다. 아이들이 함께 한 자리라서, 공부를 하다가 아이들이 울기도 하고 젖을 먹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단순히 지식만 배운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아플 때 대처하는 방법을 서로 이야기하고, 경험을 나누며 서로에게 힘을 주었다. 함께 공부할 자리를 열어주고, 우리 아이들이 좀 더 평안하게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움을 준 하세가와 키세이씨와 동종요법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끝)

키세이상의 블로그에서 찾아낸 오래된 사진 2008년 10월 7일. 홍성에서 샘이네랑 살았던 집 마당. 아마도 엄마들 모임 시작하고 얼마안되었을 때. 샘이, 강이, 여름이, 사라, 노야 진짜 그사이 많이 컸네. 엄마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상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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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8일, 나눔문화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강정마을을 찾았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품은 바다와 민주주의를 짓밟으며 세워지는 제주 해군기지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게 될 중대한 사안이지만 지난 5년간 언론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채 소리 없이 추진되어 왔습니다. 이 땅의 평화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매일 맨몸으로 포크레인 앞에 서는 마을 주민과 현장의 긴급한 소식을 전합니다. 


관련글 

제주도는 전쟁기지 없는 평화의 섬이어야 합니다 




강정마을 주민 정영희님(65세) 인터뷰

"우리에게 평화는 이 땅 강정마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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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정마을에는 ‘귀신 잡는 해군’보다 무섭다는 ‘욕쟁이 할머니’가 있다. 제주도 평화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바쁜 농사철에도 삽과 호미를 들고 뛰쳐나오는 분. 정영희 할머니는 해군과 건설업체 사람들을 만나면, 삶과 인간의 기본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호된 ‘욕’으로 공사 진행을 저지하신다. 행동은 거센 기상의 한라산을, 마음은 깊고 푸른 제주 바다를 닮은 정영희 할머니께 들은 강정마을 이야기. 



5년 동안 참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해오셨어요.

“도청 앞에서 소리도 쳐보고, 울어도 보고, 빌어도 봤어. 돌아온 건 주민들 40명 구속, 벌금 5000만 원이야. 내 땅을 지키는 게 업무방해죄라네. 평생 농사지은 우리한테 여길 지킬 권리가 없대…. 
그래서 내가 그랬지. ‘여그 업무는 농사짓는 거여! 업무방해는 여그서 평생 살던 사람들 쫓아낸 
너희들이 하고 있다!’ 그러고서 생업도 포기하고 이 땅 지키려고 목숨 걸어부렸어.”



많은 분들이 고소, 고발 됐는데 두렵지는 않으세요?

“우리가 두려운 건 벌금도 징역도 아니여. 이 땅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는 거여. 
자연이 없는 곳에 사람이 어떻게 살아. 이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 바다인디. 
이게 다 해일로 올라오고, 진짜 무서운 일들이 생길 것이여. 
뭣보다 사람도 자연도 죽이는 전쟁기지 옆에 사는 것만큼 무서운 게 어딨어.”



농사일도 포기하고 마을을 지켜온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강정마을 400년 역사 그대로 물려주겠다는 힘이지. 농사꾼은 땅을 먹고 살아. 
산에 가면 고사리, 밭에 가면 밀감, 바다 가면 고메기…. 
내가 자연한테 받은 선물 그대로 후손들한테 물려줘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야. 
그 선물을 팔아불면 농사꾼이 아니라 사기꾼이지. 우릴 지켜주는 건 법도 경찰도 군도 아니여. 
바로 이 땅, 강정마을이지. 사람이 늙고 힘없을 때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만큼 소중한 게 어딨어. 
난 천만금, 억만금을 줘도 강정마을이랑 절대 안 바꿔.”



5년 동안 가슴 아픈 순간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해군이 들어와 주민들 협박하고 이간질해서 마을 공동체를 다 찢어놨어. 
순정했던 사람들이 정부가 쥐여준 보상금 몇 푼에 무너지고, 거짓말하고, 비난하고…. 
목욕탕에서 등 밀어주던 친구가 등 돌리고, 밭에서 밀감 따주던 이웃이 적이 됐지. 
400년 동안 우애 깊게 지내온 주민들이 서로 원수된 게 제일 마음 아파. 
오늘도 해군이 찬성하는 노인들한테 일당 5만 원씩 주고 고기 사주고 여행까지 보내줬어.” 



찬성하는 주민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나요?

“윗사람들이 꼬셨지. 해군기지 들어오면 젊은 사람들도 오고, 학교랑 아파트도 들어오고, 
장사도 잘돼서 지역발전 된다고. 근데 말여, 이 많은 천연기념물, 신령한 구럼비 바위, 용천수, 소라, 
전복, 마을길….  이걸 아파트랑 돈이랑 비교할 수 있는가? 자연은 우리가 부지런히 일한 만큼 돌려줘. 
그런데 발전은 할수록 좋은 것들이 사라져부려. 도둑놈 마음만 생기고, 자연도 인간도 황폐해지지. 
시멘트 길 넓혀서 뭐 할거여. 노인들, 애들 교통사고만 늘지. 난 자동차길 말고 사람이 다니는 돌길, 
흙길이 좋아. 해군이 쌓아놓은 콘크리트, 그거 다 태풍이 쓸어가 버렸음 좋겠어. 
안 되면 내 손으로 무너뜨려서라도 막고 싶어.”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제주도는 참 슬픈 땅이야. 4.3 항쟁의 비극을 모르고는 제주도를 아는 게 아니지. 
번쩍거리는 관광지, 요 밑에 제주도민 3만 명이 묻혀 있어. 
그때는 국가가 ‘빨갱이’라고 죽여불고, 지금은 군사기지 짓는다고 마을 사람들 다 쪼까내고 있어.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안보가 사람 잡고 있는 거지. 
평화 지키겠다고 사람 죽이는 전쟁기지 짓는 게 말이 돼? 어떨 땐 포기해 버리고 싶다가도, 
강정 앞바다 바라보면 이게 평화지 싶어. 예전처럼 마을 사람들이랑 땀 흘려 농사짓고 사는 게 평화지. 
그래야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지. 안 그러수까? 
젊은이들도 우리 강정마을 잘 기록하고 오래오래 기억해줘.”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함께 막아내는 방법!


1. 제주도지사에게 전달할 서명 보내기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강정마을을 '절대보존구역'으로 복원하면 
해군기지 건설을 
막을 수 있습니다. 국민의 뜻을 보여줄 서명을 꼭 작성해 보내주세요!

 참여방법 클릭

 

2. 강정마을 온라인 카페 가입하기

강정마을에서 매일 전해오는 소식을 확인하고, 

주민들에게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전하고 싶다면 

cafe.daum.net/peacekj 에 가입하세요! 

11년 5-6월호




잘 몰랐던 강정마을 이야기. 아줌마의 글 하나에 맘이 울렁울렁한다.
어찌해야 하나, 내가 보탤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과연 막아낼수 있을까...
바위하나, 꽃하나, 파도하나, 바람하나... 기도할 뿐이구나.

어찌하다보니... 지금 남편이 강정마을에 갔다.
내몫, 여름이몫, 여울이몫까지 잘 보고 느끼고 마음을 나누고 왔으면 좋겠다.

서른에 여름이를 낳은 후로는 나이가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이 안난다. ㅋㅋ
서른넷 이라는 나이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을것 같다.
내가 서른넷이라니.. 실상. 씁쓸했고, 귀찮아서 미역국도 안끓였다.
게다가, 가장 바쁜 4월말에 생일. 5월말에 결혼기념일이라니.. 

바쁜 남편 덕분에 꼼짝도 못한다. 농한기로 기념일을 옮기고 싶다. 
그래도... 나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식탁위 조명과 거실에서 음악들을 수 있는 스피커 세팅을 남편이 해줘서 고마웠다.


엄마 생일보다는 케이크에 관심이 많은 우리 아들 딸. 매번 통밀로 만든 케이크를 갓골가게에서 주문해서 먹다가 이번에는 진한 초코케이크로 사와서 먹었다. 달콤! 사진으로 보니.. 참 분위기 있는 우리집. 식탁 위 조명은 남편의 솜씨.


서른넷. 나의 얼굴. 그리고 내딸 여울이.


서른넷의 생일은 그야말로 가족과 함께. 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커갈테고, 우리 곁을 떠날테고..
아이들이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이 없는 삶, 아이들에게 손이 덜 갈때를 위해 내 삶도 잘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더 늙기전에 농사도 배우고 싶고, 흙과 더 친해지고 싶고 꽃과 나무도 알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다. 재미있는 글도 쓰고 싶고. 생각만 해도 마음 든든한 친구들도 더 많아졌으면. 김치 만드는 것도 배우고 싶고. 내가 꿈꾸는 삶은 지금 내 삶에서 멀지 않고, 또 약간의 실마리를 붙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냥 이렇게 잘 살아가면 될 거 같다. 하하.






내 영혼에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의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이 땅에 험한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2011.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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