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2014. 9. 30. 11:22

나는 ‘성장’이 중요한 사람이다. 나는 자라고 싶고, 성장하고 싶다.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동안 계속 했다. 그 말인즉은, 나는 왜 이렇게 계속 어린 상태로, 과거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그림자에 얽매여 사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한편으로는 절망을 살고 있어서 일수도 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첫 장면, 그래타가 노래를 하고, 댄이 그 노래에 이끌려, 그 노래에 흠뻑 빠져서 같이 음악을 만들자고 했던 바로 그 장면. 성장은 어쩌면, 노력이 아니라. 어느 순간, 우연히, 어쩌면 가장 절망의 순간에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친구에게 떠밀려, 아무도 들어줄 마음이 없는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래타. 그리고 사랑하는 일터에서 떠밀려 나고, 딸과 아내와의 관계도 단절된 무능력한 중년의 아저씨, 댄. 그들이 만나서 만들어가는 노래, 음악. 


성장이 그렇게 우연히, 멋진 음악이 그렇게 우연히, 고통을 간직한 어떤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은 참 희망적이다. 내 노력으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그러나, 우연히. 예상치 못한 누군가와 만남이 예기치 않은 성장, 즐거운 인생,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즐거움과 재미. 서로가 정말 잘하는 걸 발견해가는 순간들. 그런 걸 기대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우연. 그리고 우연히 만난 친구들. 친구가 선물한 우연 속에서. 나는 나의 다른 모습, 숨겨진 나의 재미난 것들을 확인하며, 같이 즐기며 그렇게 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연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 


나를 가루라 부르고 싶다. 훅 불면, 순식간에 날아가는 가루. 물에 타면 물에 탄 듯, 바람을 맞으면 바람결을 따라가는 가루이고 싶다. 그리고 물길, 바람길, 친구 따라 강남 가다보면. 좀 더 재미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좀 더 재미있는 글도 쓸 수 있겠지. 


“There goes the pain it cuts to black

Are you ready for the last act to take a step

you can't take back“  - A step you can't take back (Begin Again OST)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Lost Stars (Begin Again OST)



그냥

2014. 8. 14. 17:24

오늘 하루.

분주했던 일이 끝나고, 지금 여기.

이 음악과 이 공간이 너무 좋아서, 여기에 머무르고 싶다.

퇴근하기 싫은 마음.

나는 어쩌면, 엄마라는 아내라는 삶보다는

나만의 삶, 나만의 방, 나만의 글, 나만의 책, 나만의 조용한 식사 시간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 시간이 머무르고 싶을뿐. 그 이상도 그 이상의 이상도 아닌.

창문 밖의 풍경이 눈부시지 않고, 적당히 흐리고 비오는 이 날씨가 참 좋은 날.

오늘은 그저 혼자로써의 나.

나만의 나로 있고 싶다.

 

'무릎딱지'라는 책을 읽고, 울었다.

읽어주면서 울었다. 나는 무엇이 그리 슬펐을까.

엄마를 떠나 보내고, 아빠를 떠나보내고, 아들을 남겨두고. 아빠를 남겨두어야 하는 아이들이 생각나서 였을까.

어쩌면,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던 것은 바로 나였고,

일 뒤에 숨고 싶었던 것도 나였고,

연락을 못하고, 찾아가지 않은 것도 나였다.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미안할 짓을 한것도 바로 나였다.

그럼에도 그럴 수 밖에 없는 나.

 

 

 

 

 

 

 

문득, 이제는 좀 힘을 내고 살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새로운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와 미래를 보며 나갈 수 있을것 같다. 

이제는 그만 뒤돌아보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생각. 

미안하다고 말하는, 실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너에게 그런 상처를 남겨서 미안하다는, 

너에게 그런 존재여서 미안하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들었다. 

더 나이들기전에, 말하고 싶은것은 말해야 아프지 않고 살수 있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참 고마웠다. 


마음속 상처가, 까만 상처가 하얗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램을 들었다. 

이제 더 이상은 휘휘 휘져어도 검은 앙금이 온마음을 시커멓게 만들지 않도록. 

그 모든 상처가, 앙금이 하얗게 변하여 없어지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나는 외할아버지가 잘못한 업으로 인해, 내가 그런일을 당했을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나에게 이제 그 일은 어린시절 하나의 상처, 이제는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상처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2014년 3월 2일.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어그러진 과거에서, 나는 이제 좀 멀리 떨어져 나왔다. 

과거를 뒤돌아보며 우는 것을 멈추고, 

이제는 좀 더 가뿐해진, 홀가분해진 나와 함께 오늘을, 내일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충분하다. 

나의 엄마, 아빠는 충분히 훌륭했으며, 충분히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사랑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더 큰 사랑을 함께 나누고 가꾸어 나갈 

남편과 아이들이 있다. 



남자라 하면, 남편의 내면이 어떤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지 항상 궁금하곤 했다. 요즘에는 아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로, 어떤 여자로 기억될지 궁금하다. 엄마와 행복한 애착관계를 맺고 있던 아기는 어느날 엄마의 진정한 소유권을 가지고 가정을 지배하는 힘센 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 그때 여섯, 일곱살짜리 아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혼자 고통을 느낀다(44)고 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남자들의 ‘의존성’에 대해 이야기되는 부분이다. ‘식사, 옷차림, 정서적 지원, 자녀양육의 문제를 어머니나 아내에게 의존한다.(170) 사실 남자들이 그토록 긴 기간 동안 여성을 억압하고 심지어 박해해온 이유도 더 잘 의존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171)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나는 이상적인 아버지처럼 안정적으로 감싸주고, 보고해주고, 의존할 수 있는 상대를 무의식적으로 찾았다. 어린 시절의 결핍에서 오는 어그러진 욕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 몇 년 흐를수록, 나는 남편의 엄마처럼 행동한다. 이거 했나, 저거 했나 확인하고, 밥을 챙기고, 자잘한 일에 잔소리를 해댄다. 어쩌면 나의 아들, 딸에게 하는 것보다 더 많이. 남편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따뜻하게 기댈 수 있는 의존할 수 있는 이상적인 어머니 역할이겠지만. 나는 그것이 서툴고. 이상적이지 않은 잔소리꾼 엄마 역할을 자처해 왔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남편으로부터 분리되고, 또 의존성을 떨쳐버리고 싶어하면서도 가장 의존하기 좋은 대상으로 남편이 존재하길 기대해왔다. 남편이 일 때문에, 집에 없는 날. 모든 스케줄이 평소보다 더 빨리 정리될 때가 있다.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는 마음은 오히려 삶은 가뿐하게 했다. 

내 남자에게 의존하는 것은, 나의 마음의 고통을, 어그러진 욕망을 그에게 투사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인정을 받고 싶고, 혼나는 것이 싫은 나는 끊임없이 남편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까, 누군가에게 욕을 얻어 먹을까, 누군가가 등을 돌릴까, 누군가가 실망하게 될까 끊임없이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가 그런 일을 겪는 것은 내가 그 일을 겪는 것만큼, 힘들 것이다. 문제는 어그러진 욕망의 눈으로 내가 바라본 상황들은 항상 어그러지고, 불안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남편이 항상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남편의 뒷통수에 대고 ‘한심한 놈’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결국 그를 판단하고, 등을 돌리고, 실망하고, 욕을 하는 그 누군가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남편에게 의존했던 마음, 그것이 사랑이라 생각하며 서로 의존하고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아내로써 마땅히 해야 할 걱정’이라는 포장으로 나의 부정적인 마음을 그에게 투사하곤 했다. 하지만, 의존과 투사는 상대를,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이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자식은 씩씩하게 부모를 떠나 자기만의 삶을 성취해나간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사랑은 ‘떠남’을 전제로 해야만 더 건강한 것이 아닐까.

나와 너의 존재로써, 각각 독립되어 든든하게 씩씩하게 내 삶을 꾸려나갈 때에만 ‘친밀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로에게 깊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마음 깊은 곳에서 서로 소통한다는 느낌(156)’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성숙한 여자, 남자가 되고 싶다. (끝)

홍매아 책읽기 모임
(2014. 1. 3)

 


다른 사람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다. 소문도 좋아하고, 뒷말도 좋아하고, 비밀이야기도 좋아하는 나, 솔직히 흥미로웠다. 유사연애에서 언제 진짜 연애가 펼쳐질까 내심 기대도 해보았으나, 이야기는 내가 원하는 대로 흥미롭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나더러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얘기부터 할 수 밖에 없다. 참 쓰라림도 많았던 부엌세간, 흔히 썩어버린 동물들, 그리고 내 무거운 영혼의 얘기부터”라고 인용한 글처럼, 창부의 역사도 무거운 영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스스로 살아왔던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분석하는 모습을 읽으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내가 가진 남자의 이미지, 여자의 이미지, 두려움, 공포, 불안감이 떠오른다. 창부의 역사와 나의 역사가 시소를 타듯 오르락 내리락 한다. 스스로의 임상역사를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창부의 역사 한 자락, 한 자락을 대하면서, 잊고 있던 저 밑바닥에 꾹 눌러뒀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친구와 함께 걸었던 산책길, 주고 받았던 편지, 외롭고 쓸쓸했던 날, 무서웠던 기억들, 그래도 그리운 순간들. 토양은 비슷했으나, 씨앗은 달랐고 그 열매도 달랐다. 쓸쓸함, 고독, 특별한 관계에 대한 갈망은 비슷했으나, 스스로 다독이며 살아온 방법은 달랐다. 


<심리적 사랑>부분에서 임상역사를 쓰고 있는 창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드러나는 것 같다. 노트북만 보고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노트북에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천장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신선한 시도였다. ‘우리가 할 일은 보다 깊이 들어가서 심층에서 사유하는 것입니다. 심층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다 보면 표면에서 일어나는 것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 부분을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습니다.(60)’ 겉으로 드러난 역사보다, 내 마음을 흘러온 역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누군가에게 나를 알리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기 위해, 나를 제대로 돌아보기 위해 임상역사를 시작한 것이니 말이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무의식적 반복이 아니라, ‘의식적 임상관찰보고서’가 출현하는 여정이라고. 왜냐하면 하나의 역사를 썼기 때문인데, 이렇게 쓰여지고 공포된 역사는 유아기의 맹목적 습성과 현재의 사회적 권력을 결합시키는 행위가 부자연스러운 것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68)’라고 쓴다. 나 역시 임상역사를 시작하면서 기대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무의식적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조금 다른 차원으로 나를 옮겨놓고 싶은 마음. 그리고 창부가 ‘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 자기를 신뢰하는 것(69)’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임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조금 다른 장을 펼치면서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깨닫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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